코틀랜드 분리투표가 세간의 화제였던 지난 9월, 비즈니스계와 유수 금융기관 대표들이 한목소리로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미 연준의 전(前) 총재 앨런 그린스펀도 스코틀랜드 독립이 부를 부정적인 경제여파를 언급하며 독립을 염원하는 스코틀랜드인 사이에 불안감을 퍼뜨렸다. 결국 근소한 편차로 분리투표결과는 NO측의 승리로 끝났고, 스코틀랜드는 영국 연합왕국의 일부로 남기로 했다.

스코틀랜드인들의 선택이 현명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분리투표가 끝나자마자 ‘경제논리’를 선두에 세운 이 수사(修辭)는 눈을 돌려 이번엔 한때 영국의 식민지자 번영하는 금융의 중심, 홍콩으로 향했다. 그들은 진정한 직접선거를 요구하는 ‘센트럴을 점령하라’ 시위대를 관영통신과 인터넷, JP모건과 HSBC, 그리고 배우 성룡 등의 입까지 빌려 압박하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홍콩의 안정을 해쳐 금융권 마비와 자금이탈을 조장하고, 결국 홍콩 경제의 쇄락을 불러일으킬 충동적이며 어리석은 움직임이라고 말이다.

무장경찰의 진압시도로 일어난 이번 폭력사태는 질서있는 선진도시 홍콩 역사에 유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중앙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자치권’을 가진 주변지역/행정구/특별지구ㅡ그 뭐든 간에ㅡ에 영향력을 가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무력화하려는 이 패턴은 어딘가 낯익었다. 불현듯 얼마전 타이페이에서 중국과의 포괄적 무역협정을 반대하는 타이완 대학생들이 국회를 점령한 사건이 떠올랐다. 마치 오늘의 홍콩 사태를 오마쥬한 듯, 당시에도 학생들이 주가 되어 반중 정서를 표출했고, SNS상에는 나와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도 격렬한 토론이 있었다. 그 토론의 중심에도 역시나 낯익은 사상적 대립이 보였다. 한 쪽에는 정치적 사안을 경제보다 우선하는 듯한 모든 행동에 냉소짓는 ‘경제적 수사법’과, 다른 한편에는 시민사회의 진정성 및 자결권을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한다는 믿음 사이의 대립 말이다.

본토 출신인 친구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현실은 중국이 타이완을 필요하는 것 보다 타이완이 중국을 더 필요로한다는 점이야. 지금은 자유니 독립이니 떠들 여유가 있겠지만, 타이완은 수출의존형 국가야. 무역이 끊기고 직장도 문닫고, 저녁때 음식마저 내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면, 저 모든 것들은 빈말에 불과해.

이에 맞선 상대방은 공교롭게도 홍콩출신의 친구였다.

경제문제가 다 였다면, 이미 부유한 국가들의 축에 오른 많은 나라 국민들이 왜 아직도 행복을 추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을까?…타이완이 ‘파레토 곡선’ 위 어디에 자리매김해야할 지는 다른 누구의 간섭 없이 온전히 타이완인들 스스로가 정할 문제야.

지금 당장 몽콕과 홍콩 정부청사 앞에서 대치중인 ‘우산혁명’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긴장감 못지않게 이 대결구도 또한 팽팽하다. 한 쪽은 홍콩의 선진 시민사회와 사법체계, 경제적 풍요가 민주체제를 받아들이기 최적의 조건이며, 중국 정부가 1997년과 2007년에 재차 약속한 행정장관 직접선출제 도입을 충실히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요구한다. 이에 대해 상대편은, 무턱대고 중국 공산당을 옹호해 여론적 수세에 몰리는 대신, 또다시 ‘경제적 수사법’을 빌려 공포감을 조성하는 전략을 사용하고있다. 먼저 급락하는 항셍지수며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홍콩을 버리고 뉴욕에 주식상장을 했음을 들먹이곤, 환적량 감소, 자금이탈, 부자들의 탈출 등을 점지한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의 종국은 남아메리카식 포퓰리즘 지옥이거나,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는 베이징의 무력개입 뿐이라는 식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식의 내러티브에 어딜 가나 피곤할 정도로 노출되어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타이완에서도, 자주(自主)와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염원을 소위 현실적인 경제적 우선사안 앞에 양보해야한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런 훈계가 과연 얼마나 타당하고 ‘현실적’일까? 세상의 모든 사상과 독트린은 의구심을 품고 각각의 상황에 비추어 조심스래 접근해야하는 법이다. 이번 홍콩사태도 예외일 수 없다.

스코틀랜드에서도, 타이완에서도, 자주(自主)와 민주주의의 염원을 소위 ‘현실적인 경제적 우선사안’에 양보해라고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런 식의 내러티브에 피곤할 정도로 노출되어있다. 과연 이런 훈계가  얼마나 타당하고 ‘현실적’일까?

우산혁명이 정말 홍콩의 비교우위를 위태롭게 하는가? 홍콩인들에게 민주주의는 “떠들 여유”에 불과한 지나친 요구일까? 여기에‘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의견의 기저에는, 홍콩이 ‘중국으로의 관문’ 이기 때문에 번영할 수 있으며 그 뿐이라는 가정이 깔려있다. 즉 중국 당국이 특별히‘관문’으로 허락한 덕분이란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하이와 선전(深圳)같은, 어쩌면 새롭고 더 나은 ‘관문’이 엄연히 있는 지금, 이 가정은 직감적으로 이상하다. 이제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와 거의 다를바 없을 정도로 개방했으며 홍콩이 더 이상 유일한 관문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위치가 세계 금융, 무역시장에서 독보적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콩의 특별함을 중국이 ‘허락’ 하는 것이라고 보는 접근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닐까? 그 곳의 번영과 특별함은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안정된 항구로서 한 세기동안 홍콩이 쌓아온 ‘신뢰’로부터 나온 것이며, 이를 중국도 인정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19세기와 20세기 대부분을 통틀어 중국은 평화로웠던 적이 없었다. 태평천국운동, 중일전쟁,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등 중원에 끝없이 혼란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영국의 비호 아래 홍콩은 아시아에서 보기힘든 부유하고 안정된 도시의 대명사가 되었다. 홍콩인의 집단적 기억 속에는 중국에게 돌릴 공로가 적어도 150년은 없다는 말이다. 소득세가 낮고 자산양도세는 전무한 홍콩의 기업친화적 세금제도도 중국에 반환되기 훨씬 전부터 시행되어온 것이다. 선천적으로 오르지 않는 세수와 비교해 이 제도가 최근 부유한 본토인들의 투기조장과 부동산 가격 폭등에 의한 빈부격차 심화라는 사회적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반(反)중국 정서와 우산혁명의 또다른 배경이 이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관대함이 아니라, 홍콩의 이러한 역사와 ‘신뢰’에 많은 이들이 공로를 돌리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오늘날 홍콩사태 후방에 있는 더 큰 대립의 원인이다. 거기에 더이상 홍콩에게만이 아닌 다른 신생도시에게 경쟁적으로 정책 지원 중인 중국 정부를 보며 홍콩인들이 불안함과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167년이라는 세월동안 홍콩인이 세계 경제와 쌓아온 ‘신뢰’의 열매를 거저 먹는 것도 모자라 각종 제재로 언론과 교육의 자유를 침해하고, 이제는 약속했던 직접선거제마저 무력화하려는 중국 정부가 좋게 보일리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홍콩 시민들에게 과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인 것은 아닐까.

홍콩시민들의 이런 불안과 염원 따위는 무시하고, 중국 공산당은 상하이와 같은 도시를 새로운 금융허브로 꽃피우기위해 정성들이고 있다. 피차 자기네가 독보적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홍콩 ‘특별자치구’가 고깝기도 할 테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상하이가 가까운 시일 내로 홍콩을 대체해 버리지는 않을까? 가능한 이야기다. 상하이 법정의 판사 자리를 퇴역한 인민해방군 장성들이 꿰차지 않고, 시 정부가 SNS와 인터넷을 검열한다며 마음대로 차단하지 않으며, 상하이 증권거래소가 도쿄나 뉴욕 수준으로 해외투자자들에게 완전히 열리는 그 날이 오면 말이다. 언제쯤 그런 날이 도래할까? 이미 런던과 싱가포르 같은 제 3의 시장에서 이뤄지는 위안화 채권거래량이 홍콩도 넘어섰다는 정보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지금,  상하이 vs 홍콩 대결구도에 쓸 데 없이 에너지를 소모할 시간이 중국에게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이론상으로, 성난 군중과 직접선거를 외치는 운동가들이 공산당 서기관들과 대륙의 큰형님들을 정말 도발한다면, 중국은 홍콩을 봉쇄하고 의도적으로 고통을 안길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경제적 수사법’이 수 없이 예언한 대로, 홍콩섬을 밝히는 전기공급을 차단하고, 무력으로 직장과 가게를 문닫게 하며, 식탁 위에 내놓을 밥과 반찬이 없어 주민들을 모조리 굶기는 초강수를 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시무시한 위협의 대가는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중국은 이곳을 희생할 수 있을까?

경제력을 무기삼아 한 때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사회 하나를 처참히 전복시키는 모습이 온 아시아에 끼칠 파장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일본과 한국같은 선진국은 물론, 이미 중국과 불편한 관계인 타이완, 미국, 그리고 베트남과 러시아같은 개발국들도 중국을 위협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아니,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치 자체가 더이상 같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결과가 장기적으로 과연 중국에 이득이 될까?

경제력이란 양날의 검이며, 동아시아는 중동처럼 허구한 날 폭탄이 터져 시민들이 죽고 나라가 무너져도 일상인 그런 지역이 아니다. 올 가을 홍콩사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홍콩이라는 한 도시의 미래는 물론 거대한 중국의 미래까지 좌우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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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g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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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 editor-in-chi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