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팽신얀(彭馨妍)

 美 버지니아대 인류학부 박사학위 과정 수학중. 미국의 중국계 크리스쳔 이민사회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국문화 및 패션에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고 있다.

성성(女性性)의 관점에서 한국대중문화의 영향력을 다루고 싶어하게 된 계기는 학부시절 친구가 알려준  ‘검사 프린세스’라는 한국 드라마였다. 대충 내용은 일류 로스쿨을 졸업한 여주인공 마혜리가 검사로서의 경력을 쌓으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약간 진부한 플롯은 차치하고, 정말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드라마속 주인공이 체중감량을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들이는가였다. 로스쿨의 짝사랑 상대가 단짝 친구와 연인사이임을 깨닳은 마혜리가 집에 돌아와 밤낮으로 서럽게 울고있자, 그녀의 엄마는 딸을 거부할 수 없는 절세의 미녀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심한다. 다음날 아침, 마혜리는 운동기구와 창문 밑으로 집어넣은 샐러드 한 그릇만 덩그러니 있는 허름한 지하실에서 깨어난다. 갑자기 어디선가에서 트레이너 두 명이 들이닥치더니 반쯤 넋나간 주인공을 러닝머신 위로 번쩍 들어올려놓고는 스파르타식 체중감량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이렇게 다이어트에 돌입한 주인공은 결국 변신에 성공, 옛날에는 입지 못하던 예쁜 옷들을 잔뜩 입고 화장까지 한 다음 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선다.

제목 없음

지를 시간이다.

2013년 6월, 아시아 여성들의 여성성과 신체에 대한 관점에 한류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현지조사 차 타이페이(台北)로 날아갔다. 소도매업자들과 젊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계획하고 있던 나에게 모두가 우펀푸(五分埔) 시장으로 가보라고 추천했다. 타이페이의 대표적 패션거리중 하나인 우펀푸는 서울에서 공수해온 의류와 잡화, 화장품, 뷰티 상품으로 젊은 여성은 물론 관광객 사이에도 각광받는 장소이다.

입구 바로 옆의 한 상점으로 들어가자 검은 티셔츠와 딱 붙는 청바지, 뿔테 안경을 쓴 20대 중반의 매니저가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한국 스타일의 옷을 골라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슬림한 흰색 민무늬 셔츠를 집어들면서 “한국에서 유행하는 셔츠인데, 보다시피 손님에게 조금 타이트할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했다. “한국 옷은 요구 체형이 좀 까다로운 편이지요. 물론 여기 사람들도 충분히 마른 편이지만…한국 여자들은 마음 먹으먼 더 슬림하게 갈 수도 있거든요.” 매니저의 소견에 의하면, 한국 여성패션의 특징은 마른체형이 돋보이면서 성숙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다. 이는 ‘어리숙하면서 귀여운’ 고교생 이미지가 유명한 일본 스타일과 차별되는 것이다.

한국브랜드 의류를 소개하는 패션잡지 기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한국의 쇼프로 진행자이자 패션계의 권위자인 유라의 첫 타이완 방문을 기사화한 보그(Vogue)타이완 지는, 그녀가 타이페이의 동먼(東門)지구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한국 패션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먼저 언급한 뒤, 그녀가 정의한 한국 패션의 핵심은 “편하고 사치스럽지 않으나 세련됨” 이었다고 전달했다.

활발하고 진취적인 룩

활발하고 진취적인 룩

한류의 영향력에 힘입어 일본식 ‘소녀만화’ 스타일을 천천히 대체해온 한국 패션은 타이페이에서 흔히 ‘징쉬뉴(輕熟女 경숙녀)’라는 유행어로 불리는 특정집단과 연결되곤 한다. ‘살짝 성숙한 여성’이라는 뜻의 징쉬뉴는 일상생활은 물론 직장에서도 독립적이며,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자립한 20대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싱글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현지 조사에 협조해준 여러 남성들의 말에 따르면, 일본식 스타일은 타이완 사회 남성의 사회경제적 권위에 덜 위협적으로 비춰진다는 점에서 좀 더 ‘여성스럽’게 느껴지는 반면, 한국식은 활발하고 진취적인 ‘징쉬뉴’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 의견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국식 패션은 ‘덜 여성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 패션은 새로이 떠오르는 사회계층인 타이완 輕熟女들에게 세련됨과 우아함, 생활면에서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신세대 여성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닐까.

오피스룩

오피스룩

‘징쉬뉴’와 한국식 패션 덕에 타이완 여성들은 좀 더 다양한 의미에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자기 이미지를 만들 선택권이 주어진 셈이다. 이는 비단 일본식과 한국식, 여성성과 남성성의 인식차이라는 틀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와 개성(個性)의 대두라는 범세계적 변화의 물결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중국이 세계시장에 문을 열면서 신자유주의적 가치들도 조금씩 중국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여성 개개인의 ‘개성’을 표출할 권리, 또는 개성이라는 관념 그 자체가 부각받기 시작한 것이다. ‘나란 존재를 어떤 여성으로 정의내릴것인가’ 하는, 전에는 묻지 않던 존재론적 고민과 선택권이 주어진 시점에 맞춰, 한국 패션은 타이완은 물론 중국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하나의 초이스로서 사랑받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세련되며 독립적인 여성상을 구현하는데 큰 몫을 하는 한국 패션이 중화권 여성들에게 더 날씬하고 슬림한 몸매를 만들도록 압박감을 주고 있다는 점은 한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세련되며 독립적인 여성상을 구현하는데 큰 몫을 하는 한국 패션이, 중화권 여성들에게 더 날씬하고 슬림한 몸매를 만들도록 압박감을 주고 있다는 점은 한편 아이러니하다. 세계 대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날씬함은 타이완에서도 이미 미모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한국 패션은 어째서인지 특별히 슬림한 몸매를 강조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내가 만난 타이페이의 여성들도 하나같이 더 마르고 ‘완벽’한 몸매를 만들어야 한국식 옷을 소화할 수 있다고 믿는 듯 했다. 먹는 것 마다 일일히 열량을 재고,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된다는 상품을 구매하는 등 그녀들이 몸매관리에 쏟는 눈물겨운 노력은 마혜리의 그것 못지 않았다.

예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참 예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서울에서 유행한다는 블라우스와 스키니진을 즐겁게 사면서도 그 옷에 걸맞(아야하는)는 몸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타이완 여성들이 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류 열풍에 맞게 트렌디해보이고 싶다고? 그럼 우선 다이어트부터 해야할 성 싶다.  영문으로 읽기

Sunny Xinyan

Sunny Xinyan

Sunny is a PhD student of Anthropology at University of Virginia. Her current research studies mainland Chinese immigrants with the Protestant faith in the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