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과 변호사들에게 맡길 내용일런지 모르지만, 국제정치와 법이 심심찮게 충돌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번 달 미국과 한국의 법원이 일본에 대해 비슷한 판결을 내렸고,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전혀 달랐음을 주목해보자. 일본은 바다 건너 멀리 있는 어느 법원의 판결을 즉각 따르기로 했지만, 다른 법원의 판결은 손사래를 치며 무시해 버렸다. 어느 곳이 어디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13년 5월 16일, 뉴욕지방법원 판사는 일본 최대 은행인 도쿄-미츠비시 은행이 보유한 모든 이란 자산을 동결할 것을 판결했다. 이 판결이 일본의 이란산 석유수입에 큰 차질을 줄 수 있음에도 도쿄-미츠비시 은행은 이를 신속히 받아들였다.

일본과 이란을 희생양 삼은 이 해괴한 판결은, 역시 이란이  1983년 레바논의 헤즈볼라 테러 공격에 의해 죽은 미 장병들 유가족에게 갑자기 2007년이 되서 수백억 달러의 보상금을 물도록 한 어불성설 케이스가 연상된다.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어떻게 일개 지방법원의 판사가 내린 결정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일본 최대 금융기관에 이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의아했다. 만약 중국이나 태국, 혹은 필리핀의 지방 판사가 일본 은행에게 자기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 어느 나라와 관련된 자산을 모두 동결하라고 한다면, 과연 일본이 저렇게 순순히 받아들일까?

자기네 정부와 사업체들에게 법원이 판결과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뉴욕주 지방법원이 엄연히 주권을 가진 다른 나라까지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럼 중국 법원이 이런 판결을 내리지 못한다는 법은 어디에 있는 걸까.

변호사 출신이자 일본의 석유수입과 관련 경력을 보유한 경제산업성(経済産業省, METI) 장관 에다노 유키오도 비슷한 소견을 가진 듯 하다. 기자들에게 그는 “법에 대한 내 지식에 비출 때, 미국의 일개 법원이 다른 주권국에까지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라고 말했다.

에다노와는 달리 일본 금융상 지미 쇼자부로는 이 문제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도쿄-미츠비시 은행은 에다노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뉴욕지방법원의 결정을 용의주도하게 계속 따르다가, 지난 금요일 미연방법원이 자산동결조치를 해제하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결론적으로, 법적 구속력과 관계없이 일본은 이란을 향한 일개 지방법원의 치외법권을 묵인한 셈이다.

반대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법원이 판결을 내렸을 경우 일본의 반응은 정 반대다. 지난 목요일, 한국 대법원은 1905-1945년 일제강점기동안 강제동원된 전(前) 노동자들에게 미츠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철강이 보상금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일본 법원들이 보상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이전 판결들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합법적(合法的)이었다고 암묵적으로 승인함으로서 대한민국 헌법에 반(反)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한 1965년 한일협정의 범위는 두 나라 간의 “재산”과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강제징용자들의 보상문제는 별개라고 판결했다.

아무래도 한 나라 대법원의 결정을 뉴욕 지방법원보다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두 말할 필요 없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뉴욕 법원이 다룬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역사적 문제를 법적으로 좀 더 심사숙고해 도출한 결론인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 징용자에게 지불해야할 금전적 보상은, 전 일본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의 금융자산을 동결해버리는 것과는 달리 피해랄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각관방장관 후지무라 오사무는 이 판결에 대해 금요일 아침에 “한일 청구권협장에 의해 한일 간 재산청구권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 이라고 일축했다. 판결 자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외국 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해서 아무런 할 말이 없다”라고 답했다.

한겨례 신문의 정남구 도쿄 특파원은 일본 아사히신문과 산케이신문 기사들이 본 판결에 대한 반응을 다룬 관련기사들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2채널’ 등 인터넷 토론게시판에서는 “다른 나라의 판결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거나 “한일기본조약을 파기하고 국교를 단절하려는 것인가”라는 등 판결을 비판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 두 나라의 인식의 차이를 드러냈다.”

이 두 사건들이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참으로 곱씹을 만 하다. (아마 우리 외 아무도 관심이 없겠지만) 이 웃기지도 않은 뉴욕주 법원의 사법상 권한에 제한을 가하자는 호소는 왜 없었는가? 이미 전력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일본에게 석유공급을 중단함으로서 더 큰 위협을 가하는 미국 지방법원의 판사에게는 도대체 어째서 아무런 국수주의적 분노가 일지 않았단 말인가?

뉴욕주 법원과 도쿄-미츠비시 은행 사건에 대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일본이 친구이자 동맹국인 나라를 존중하는 의미를 표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일본의 은행이 뉴욕주 판사의 말을 굳이 따라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미합중국에 대한 진심어린 친절의 제스쳐로서 판결에 승복했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해, 넓게 보자는 것이다.

일본은 하필 아시아 나라들에게만
적법성을 따지고드는 차가운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넓은 시야’를 가지고 한일간의 참된 우정을 쌓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은 냉전체제라는 현실 아래 한국 대중의 의견을 누르는 군사정권이 다스리고 있었음을에 주목할 것이다. 이제 민주주의를 꽃피운 대한민국에서, 그동안 억압받았던 계층들과 의견이 다시 지면으로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일본은 1965년에 군사 독재정권이 미래에 있을 청구권까지 모두 묵살해버리는 협정에 사인했음을 계속 들먹이겠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 시민들의 진실된 우정을 만들어가는데 이런 자세가 어떤 일말의 도움이 되겠는가.

만약 일본이 미국에게 보여주는 관대함과 유연함의 반 만이라도 한국에 보여준다면, 양자간의 해묵은 갈등이 얼마나 빨리 공기중으로 기화(氣化)해 사라져버리겠는가. 현실주의 전략적 측면에서 볼 때도, 일본과 한국은 동아시아의 최대 우방국이 아닌가? 일본이 이웃인 한국을 친구로 삼으로서 당연히 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나라를 계속 갈라놓는 것은 결국 인종우월주의이다. 일본의 보수는 한국보다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오만함을 한국인들도 다 알고 있고, 40년동안이나 일제의 철권 탄압을 받은 현대사를 겪었기에 더더욱 이를 가는 것이다.

일본정부가 한국과의 우정을 쌓고자 지금 성급히 움직인다면 무리수일 뿐이다. 최근 한일군사정보협정이 무산된 것도, 여론이 두 나라를 어떻게 갈라놓는지 극명히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마음속 깊은곳에서부터 한국인에 대한 자세를 바꾸려고 한다면, 두 나라가 친구가 되는 데 생각보다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Byung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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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 editor-in-chief

  • Bomshin Chris Kim

    2ch는 일본 내에서 가장 극우성향이 강한 사이트 중 하나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의견을 일반적인 대중의 견해로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을듯. 어찌 되었던, 일본의 과거사 반성의지야 말로 동북아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첫 걸음이 아닐까 싶음. 어떤 중국인 교수분이 말한 게 생각나는데,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각 각 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잘 사는데, 과거사나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이러한 경제적인 힘이 시너지를 낼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했음.

    • http://bilingualasiawatch.com Byunghun Yoo

      2ch는 뭐 일본의 일베라고 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