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왕의 남자』

2005년 겨울, 천만 관객을 단숨에 돌파하며 전국을 휩쓴 화제의 영화 「왕의 남자」는 광대들의 이야기다. 암투와 피냄새 가득한 궁궐로 모종의 목적을 갖고 광대패를 불러온 처선에게, 반정을 꿈꾸는 중신이 넌지시 묻는다: “광대를 끌어들인 것은 누구의 뜻이었습니까?”

이미 영화의 후반부를 달리는 시점에, 관객은 광대들이 입궁함으로 일어난 온갖 변화와 드라마를 보았다. 그럼에도 처선은 조용이 차를 한모금 마신 뒤, 철판을 깔고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받아 넘긴다.

“광대는 그저, 광대일 뿐이지요. 웃고 떠들면 그만입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곧 이어 따라올 반정, 주인공들의 비극적 말로는 알 듯 모를 듯 암시만 한 채 그들은 서로의 뜻만 확인하고 차를 나눈다.

권위의 가장 큰 적은 경멸이며,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웃음이다. – 한나 아렌트

희화와 웃음, 권위에 대한 기저로부터의 도전, 이로 인해 움직이는 민중의 힘이라는 구도는 사실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은 이 테마를 본격적으로 서사화한 명작이다.  고립된 중세 수도원에서 터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그리고 이를 추리해나가는 과정에서 밝혀진 사상적 대립은 다름 아닌웃음의 힘과 이를 두려워하는 권위주의적 수도사 사이의 대립이다. 범인은 한 치의 의심 없이 ‘웃음’이야 말로 인간을 지옥의 두려움,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교회는 물론 신앙체계 전체를 몰락시킬 것이라 믿는다. 그는 이를 맹신한 나머지, 웃음의 비밀이 적혀있다는 가상의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 2권 <희곡편>에 맹독을 바르고 이를 읽은 모든 수도승들을 살해한다.

웃음이란 민중의 보편적이고 건강한 에너지의 자연스런 분출이다. 웃음의 기원은 곧 사물이나 대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성(他性)의 존재가 나의 자아 또는 존재 목적에 어떠한 강압적 영향을 주지 못하며, 반대로 나 또한 그럴 일이 없음을 안면근육과 목소리를 통해 생리적으로 선언하는 것, 그것이 웃음이다.

따라서 웃음의 필요조건은 곧 자아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원초적 자존감, 즉 내면의 당당함이다. 나는 나이고 내 갈길이 있는데, 너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거늘 거기 서서 뭔 짓거리를 하느냐! 하는 심보로부터, 상대의 ‘같잖음’이 느껴진다. 그 감정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희화의 기본 매커니즘 아니겠는가.

<희극편>은 현존하지 않는 책이지만, 필시 이 원리를 고대의 현인도 꿰뚫고 풀어놓았으리라. 여색을 밝히는 술주정뱅이 왕과, 뇌물을 돌리며 굽신거리고 한 쪽에선 떵떵거리기 바쁜 사대부의 ‘같잖음’을 조롱하는 광대들의 연기를 매개삼아 박장대소하는 것. ‘결국 높으신 저것들도 우리와 매한가지구나’ 라는 생각ㅡ 이것이 웃음의 힘이다.

이는 지배계층이나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웃음의 결론은 짧든 길든 결국 자존감의 재확인이지, 웃음의 대상을 배제하거나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광대들이 왕의 권위를 나락에 떨어뜨릴 망정, 그들은 쿠데타나 암살을 부추기려는 어떤 사회적 변화를 목적하지는 않는다. 내시 처선이 “그저 웃고 떠들면 그만입니다.” 라고 한 이유다.

물론, 그 떨어진 권위를 기회삼아 체제의 전복, 사회의 변화를 감수하는 것은 이제 다른 부류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웃음의 힘은 그 배경을 잔잔히 내어줌과 동시에, 현실에 억눌려있는 민중에게 숨통을 트여주는 것 뿐이다.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은 조롱이나 희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를 원만히 되받아친다.
영미권 정치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덕이다.

결국 웃음이란 자존감의 자연스러운 표출이라고 할 때, 자존감 있는 사람은 본인이 희화, 심하게 조롱의 대상이 되더라도 분개할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사실이기 때문에 놀림을 당하는 것이거나, 사실무근이더라도 그의 자아에는 아무런 흠집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은 조롱이나 희화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를 원만히 되받아친다. 이는 아시아에서는 드물지만 영미권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은 물론 당선 후에도 출생지가 인도네시아니(그는 하와이 출생이다), 흑인 무슬림이니 하는 유언비어를 마주했는데, 2011년 백악관 만찬에서도 자신을 흠집낸 재벌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도널드, 이제  내 출생 비밀은 그만 캐고 좀 더 의미있는 걸 캐보지 그래요? 아폴로 달착륙은 조작이었는가, 로스웰 외계인 사건은 사실인가 같은 것 말이죠
라며 받아쳤다. 심지어 50년동안 자기도 본 적 없는 출생 녹화물이 있다면서 아기 심바(디즈니 ‘라이온킹’의 주인공 사자)의 출생을 축하하는 오프닝 비디오를 틀어주기까지 한다.

런 면에서, 한국인은 과연 유머있는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려봤다. 결론부터 말해 딱히 그렇지 못한 편인 것 같다. 툭하면 욱 하는 성질머리하며, 비위니 체면이니에 목숨을 다반사로 거는 열혈 국민성의 기저에는, 자신이 누군가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죽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졸렬함이 웅크리고 있다.  국회 앞에서 한 밤중에 택시기사를 붙잡아 놓고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고래고래 악을 쓴다던가, 기내식 땅콩봉지를 안뜯었다고 비행기를 돌리게 했다던가 하는 어의없는 소리를 들으면 더욱 그렇다. ‘나는 대접받아야 할 몸인데, 어떻게 이런 모욕을!’하는 하류적 졸부근성이  만연한 것이다. 이는 역으로 (어째선지)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고래고래 소란이라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결국 자존감의 결여와 다름 아니다.

photo: ramascreen.com

국제적 문제의 영화, 「The Interview」와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소니 픽처스 해킹사건의 경과를 보면 든 생각도, 김정은이 ‘역시나 우리와 같은 조선놈이구나’라는 것이었다. 사생활도 똘끼 충만함으로 평판난 제임스 프랭코와 코미디 전문배우 세스 로건이 출연하는 작품으로부터 당췌 무슨 고상함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개 영화 한편이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며 또 한번 실없는 독설을 퍼붓고, 심지어 영화사를 해킹까지 하는 작태는 부끄럽게도, 조금이라도 웃음거리가 되기만 하면 비위상해 열불내며 과민반응하는 우리네의 그것이 연상되었다.

희화를, 유머를ㅡ비록 악의가 들어있다 하더라도ㅡ 도무지 참지를 못하는 얄팍하디 얄팍한 졸렬함. 과연 김정은 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언론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아량이나 위트가 있는가?

이 모든 것이 노이즈 마케팅으로 영화를 팔아먹으려는 미국과 일본 소니의 음모였다는 이론과 별개로(사실이면 뭐 어떻는가), 「The Interview」사태가 동아시아의 수많은 고지식한 노중년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너희도 얼마든지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같잖은 희화의 대상이며, 온라인 스트리밍과 모바일 콘텐츠 유통의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권위와 복종, 삼강오륜 운운하는 전근대적 미덕을 아직도 사회안정의 이데올로기로 붙잡는 사회라면 말이다.

김정은은 물론이거니와, 상대가 일본 천황이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든 상관없다. 희화의 주체인 영화, 꽁트, 전단물, 미술작품, 그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아무리 저질스럽고 B급이더라도 언론과 표출의 자유는 존재한다. “광대는 그저 광대일 뿐”이니까. 다만 관심가는 것은, 그 희화의 객체가 된 대상이 얼마나 세련되고 재치있게 이를 맞받아칠 수준이 되는가이다. 과연 우리 대통령이나, 아시아의 지도자들에게 오바마와 부시, 링컨의 유머를 기대해도 좋을까? 우리는 ‘내면의 당당함’을 가졌는가? 웃음이 우리를 자유케할지니.

 

Byunghun

Byunghun

Founder, editor-in-chief

  • Bomshin Chris Kim

    기사를 읽으니까 그저께 있었던 파리의 한 언론사에 대한 테러가 생각남. ‘최고 존엄’에 대한 풍자와 조롱을 테러를 통해 응징 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에 유사점이 있지 않나 생각 되는데. 어떤 기사에서 시민들이 사건 이후 추모하는 집회에서 JeSuis Charlie라 적힌 피켓들 을고 다녔다는데, 풍자와 조롱 또한 언론의 자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프랑스 시민의 모습을 보면서 배울 게 많다 생각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