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 맞다. 동아시아의 해묵은 역사논쟁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일본, 중국, 한국, 그리고 확실히 해두자면 미국까지도.

이미지: 텔레그라프紙

웬디 셔먼 국무부 차관의 카네기 재단 연설의 파장이 대단하다. 특히 “민족감정을 이용하여 동아시아의 지도자들이 값싼 박수를 사려한다”는 대목에 많은 이들이 욱했다. 그 지도자들이 정확히 누구를 지목하는가와는 별개로, 워싱턴 외교가는 그녀의 발언이 의외라는 반응이다. 국무부 부대변인 마리 하프도 포함해서 말이다. 다름이 아니라 그녀는 클린턴 정부 시절 대북협상을 주도했으며, 세 행정부를 섬긴 잔뼈굵은 동아시아 전문 외교관이다. 복잡한 한반도의 상황에 무지한, 멋모르는 뜨내기 공무원이 아니란 말이다. 미 정부의 방대한 관료사회 내에서도, 현 상황이 일본은 대인배여서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려하고 한중은 시시콜콜 시비나 거는 그런 모양새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축에 속해야했다. 고의였던 걸까. 그녀의 메시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기대에 한참 떨어진다. 웬디 셔먼이 놓친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뒤늦은 착한 척

먼저 일본의 소극적인 과거청산 태도를 가능케 한 것은 다름아닌 미 정부의 묵인 또는 무관심이었다는 것이다. 40년대 후반과 50년대를 통틀어 미군정은 일제의 후예인 자민당 우익인사들, 그리고 그들과 유착한 재벌세력을 그대로 권력층에 세워두었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일본열도는 대륙의 공산세력과 맞서는 해상 요새가 되어야했고, 모두가 이런 지정학적 전략에 몰두하는 동안 전범들과 태평양전쟁의 원흉들은 체벌을 면했다. 도쿄전범재판은 일방적으로 전승국들이 주도한 행사였고 일제의 피해 당사자들인 아시아 민중의 대표는 초대받지도 못했다. 90년대가 되야 인권문제니 보상이니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미국은 뒤늦게 그동안 한중이 쌓아온 적대감과 상처를 봉합하려 전전긍긍하고 있는 그림인 것이다.

미 정부의 상대적 무관심, 또는 의도적 무시가 과거사에 대해 일본이 사과할 필요를 느끼도록 충분히 압력을 넣지 못했기에, 이제와서 선량한 중재자 노릇을 하겠다는 셔먼 차관의 발언이 거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한국인들의 가슴을 후비며 드러낸 감정은 바로 배신감이다. 2차대전 당시 자국의 일본인 수용소 문제만 떠오르면 미국이 얼마나 저자세인지 들었을 때, 한국인이라면 느꼈을 그 괴리감 말이다. 그렇게 진실과 정의, 사죄를 중요시하는 동맹국 미국이, 어째서 우리에겐 저렇게 냉정하기만 한것인가?

 

감정의 국제정치

이걸 우리만 신경쓰던 것이었다

다음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요소, 소위 감정의 국제정치라는 것이다. 한중일 국민들이 위안부, 독도, 야스쿠니, 난징 대학살 등의 단어에서 느끼는 정서적 신호의 간격은 너무나 크다. 그 주파수를 맞추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며 민간교류부문에서나 시도가 활발한 정도다. 그런 점에서 연세대 국제학부 손열 교수가 지적했듯이, 국민의 지배적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적 비용이 너무 비싼 것이지, ‘과거의 적을 비난’해 얻는 박수가 ‘싼 것’ 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는 비단 한중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경제문제와 원자로 재가동에 더 신경쓰는 일본 국민들은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아무리 망언을 내뱉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든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아베의 신사참배에 실망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동안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어필해온 아베가 넙죽 사죄라도 한다면? 일본 의회는 바로 해산하고 총리대신을 다시 뽑아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동아시아는 역사인식이 현실정치까지 영향을 끼치는 극도로 민감한 곳일진대, 오바마는 물론 전세계가 인정하는 추세인 종군위안부에 대해조차 “소위 ‘위안부'(the so-called comfort women)”라는 경솔한 단어선택을 한 웬디 셔먼. 아예 비난을 돈주고 바가지로 샀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누구를 변호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셔먼 차관이 순수히 온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염원해서 저런 발언을 했다고 보기에는 국제정세와 타이밍이 교묘한 구석이 있다. 미국은 수년을 끈 일본과의 환태평양 자유무역협정(TPP) 막바지 교섭에 안간힘을 쓰고 있고, 아베 총리는 다음달에 첫 미 의회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워싱턴의 수많은 싱크탱크들과 연구소들은 일본계 민간단체들과 소위 ‘국화클럽’ (국화는 일본 황실의 상징) 의 돈으로 넘쳐난다. 미국의 ‘아시아 회기’ 전략의 ‘주춧돌(cornerstone)’이라는 일본을 셔먼이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건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애써 구축한 이 장기판에 순순히 들어맞지않아 불편한 나라는 다름아니라 중국과 친해지는 한국이다.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중국의 부상에 멍군을 두려는 이 거대한 계획에 한국이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MD 시스템 편입도 싫고 한일정상회담도 싫고, 군사정보협약도 이제야 겨우 합의한 박근혜 정부가 눈엣가시처럼 보인 모양이다. 한국을 4000년 역사의 독립된 주권국이 아니라 그저 미 대외정책의 전략적 ‘쐐기(linchpin)’ 중 하나로 보는 국무부와 펜타곤의 팽배한 인식을 웬디 셔먼도 결국 벗어나지 못한 걸까. 한국이 왜이렇게 말을 안듣지? 왜이리 불협화음을 내는거지? 하는 짜증섞인 속내가 이번 연설에서 드러난 것은 아니었을까.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에 대한 우선순위의 시각차

아무래도 한미 간에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우선순위에 대한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듯 하다. 미국의 위정자들에게 있어 일본은 영국, 이스라엘과 동급인 트리플 A급 파트너다. 워싱턴 D.C 대로변에 흐드러지는 수백그루의 벚꽃나무가 이를 상징한다.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전략적 중요도, 경제 기여도, 로비력 그 어디를 봐도 미국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국민의 시각도 생각해 봄 직하다. 어떻게 전장에서 함께 싸운 혈맹관계인 한미동맹이, 한때 서로 적국이었던 미일 간에 체결한 동맹보다 부차적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시각에서 보았을 때, “과거의 적”과 동침하여 “값싼 박수를 산” 사람은 다름아닌 웬디 셔먼 본인인 것 같다. 물론, 이건 말장난이다.                        영문으로 읽기

Byung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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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 editor-in-chi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