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ents of Japanese abductee to North Korea, Megumi Yokota, hold the pictures of her daughter

일본인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씨의 부모

 

북일협상 ‘직전’ 통보받은 韓…”우리만 몰랐던 거 아냐” – NoCut News

북일합의…한미일 공조 흔들기 中 노린 듯– News 1 Channel
년전 일본을 여행했을 적이다. 토지기 현 닛코(日光)시의 명물이자 세계문화유산인 도쇼구(東照宮)를 보러 기차를 탔다. 3시간 남짓한 기차여행 중 내 맞은편에 앉아 계신 할머니가 차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부셔 불편해보이길래 자리를 바꿔 앉으시겠냐고 물었다. 한사코 손사래 치시며 괜찮다 하셔서 그대로 있었지만 덕분에 말을 트게 됬다. 할머니와 옆자리에 함께 앉은 따님 두 분은 새해를 맞아 역시 도쇼구에 참배하러 가는 길이었다. 닛코라는 외국인에겐 다소 생소할 곳을 혼자 여행중인 나에게 두분은 관심을 보였고 곧 이야기 꽃을 피웠다.
“유학 중에 혼자 닛코까지도 가고, 역시 한국 사람들은 병역(兵役)의무 때문인지 용감하네.”

맞아, 일본의 요즘 아이들은 나약해. 아마이(甘い)하지.

당시 나는 아직 미필이었지만, 어찌됬든 두 여자는 그네들의 지식선에서 한일간의 비교를 했고 나도 부족한 일어실력으로나마 대화를 거들었다. 두 분은 매우 친절했고 역에서 헤어질때 자기가 읽던 책을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

‘아마이’ 는 본래 음식이나 음료가 달다는 형용사지만, 문맥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나 정신이 안이하다, 또는 투철하지 못하고 처세가 약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이 약간 얼빠진 듯 ‘아마이’해 보일 때가 분명 없잖아 있다. 아키하바라나 하라주쿠 앞에서 조잡한 코스튬을 입고 시시덕거리는 모양새라던가, 꽤나 퇴폐적일 때가 있는 그들의 소비문화산업 등을 보면 그렇다. 비단 젊은이들 이야기 만은 아니다. 한국 드라마 촬영지를 보겠다며 놀러오는 아주머니들이라던가, 언젠가 이케하라 마모루(池原 衛)가 쓴 「맞아죽을 각오하고 쓴 한국, 한국인」의 서문에서 “어머, 북한과 한국이 원래 한 나라였어요?”라고 말했다는 어느 무식한 사람의 이야기 등을 들으면 더욱 그렇다. 경제 대국, 복지치안 선진국이라는 그들만의 완벽한 봉래국(蓬萊) 안에서 일본인들은 바깥세계에 무지한 채 살아가고 듯 했다. 중국의 부상, 서방세계의 경제위기,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정세는 뒷전으로 하고 교토의 벚꽃 속에 노닐듯이. 일본의 부진한 성장과 토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다른 것은 조용히 체념까지 한 분위기였다.

과연 일본인들은 대내외적 경쟁과 북한과의 대치, 병역으로 억세게 다져진 한국인에 비해 ‘아마이’ 한걸까.

비교대상을 좀더 세분화하지 않았더라면, 기차에서 조우한 두 분의 말을 그대로 수긍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외교적 문제들과 일본정부의 대담하면서도 노련한 처신을 지켜보니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끔 됬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 재조사를 지렛대 삼아 자체적 제재 철회 및 국교정상화까지 노리고 있는 소위 북일 ‘밀회’ 소식에 뒤늦게 당황하곤, 변명하기 바쁜 한국 외교가야말로 턱없이 ‘아마이’하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가 이전 정권 시절부터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활동해 정계 커리어를 쌓아온 점, 26일부터 스톡홀름에서 공개적으로 북일 양측 관료들이 회의를 가졌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일본의 최근 대북 결정이 그리 예상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관련 현안인데도 미리 통보를 못받았다”는 구차한 불평밖에 한 것이 없는 외교부가 한심할 뿐이다. 주권국가로서 일본은 얼마든지 UN과 별개인 무역제재 철회를 담보로 북한과 교섭할 권리가 있고, 엄밀히 말해 안그래도 반일 감정이니 역사문제니 곱게 보일 리 없는 한국정부에 이를 친절히 통보해 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국제법상으로도 깨끗하거니와, 틈만나면 위안부로 한국이 물고 늘어지는 인권, 인도적 차원에서 봤을 때도, 납치된 자국민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데 무엇이 아쉬워 한국 눈치를 보겠는가? 심지어 사사건건 영유권 시비를 거는 중국조차 북일관계 개선의 제스쳐로서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나? 미국? 아태지역에서의 군사적 영향력 유지를 위해선 “침물하지 않는 항공모함” 인 파트너, 일본이 절실한데 감히 누굴!

이처럼 이번 납치자 문제 재조사 합의는 냉각되어있던 북일관계에 있어서 일본이 독자적으로 찾은 타계점임과 동시에, 중국과 북한 인권문제가 세계적으로 공론화되고, ‘아시아로 회귀’ 하려는 미국의 상대적 일본 의존도가 높아지는 절묘한 시점을 기회로 삼은 외교적 노력의 성과이다. 북한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중국마저 장성택 및 친중파 숙청때문에 이례적으로 등을 돌리고, 도발과 개성공단 폐쇠 협박에도 꿈쩍하지 않는 박근혜의 남한까지, 모든 면에서 수세에 몰린 북한이 급하게 자금난 해소구로서 일본에 접근한것은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납치자 재조사 합의는 북일관계에
일본이 독자적으로 찾은 타계점임과 동시에,
중국과 북한 인권문제가 세계적으로 공론화되고,
‘아시아로 회귀’ 하려는 미국의 상대적 일본 의존도가
높아지는 절묘한 시점을 기회로 삼은 성과이다.

과연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런 국가간의 맞물린 이해관계와 최근 동향에 대해 얼마나 분석하고 있었을까? 대통령의 중국, 유럽순방과 드레스덴 구상같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별다른 성과없는 쇼에 열을 올리는 동안, 일본과 북한, 그리고 미중이 물밑에서 어떤 줄다리기와 합종연횡을 하고 있을지, 생각만해도 불안하다. 하기야, 제 집앞인 휴전선 바로 너머 상황도 일본 교도통신이나 미국 민간연구소 홈페이지가 올리는 위성 사진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정보력에 무얼 기대하겠는가. 언론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우리 외교관들과 주요 인사들이 대한민국의 안보와 미래를 위해 무대 뒤편에서 땀흘리고 있다, 고 믿고싶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드러난 바로선 외교부는 터무니없이 ‘아마이’했을 뿐이다.

얼마전 남수단에서 평화유지군활동을 하던 우리 군이 테러 위협을 받자 근처에 주둔하던 일본 자위대로부터 실탄을 지원받은 사건을 보아도 그렇다. 아베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팽창을 위해 이용했느니ㅡ집단적 자위권은 UN 헌장이 모든 가입국에게 허가한 정당한 권리다ㅡ 무기수출 금지 원칙을 어겼느니 하는 의견에 귀기울이기 전에 본질부터 살펴보자. 멀고 먼 타국 분쟁지역으로 보낸 부대가,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실탄도 없어서 옆나라 군으로 부터 덥석 받아놓고선, 정부는 감사하다는 말은 커녕 이를 무섭게 정치문제로 비화해버리는 것인가? 한빛부대와 국방부, 나아가 외교부야말로 철저한, 아니 그저 기본에 충실했던 자위대에 비해 너무나 ‘아마이’했다.

론적으로 평범한 일본인들은 그들의 작은 섬나라에서 안일하게 살고 있을지 모르나, 일본 정계 인물들과 외교관, 군사 지휘관, 해외 조력자들은 외교정보전에서 무능한 한국에 비해 얄미울 정도로(얄미울 것은 또 무엇인가! 그래야 정상인데) 영민하고 유능했다. 물론, 이번 일본의 행동이 북한의 핵개발을 억지하려는 한미일 공조에 금이 가게했다는 비판은 나도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만약 이 유연한 대북 제스쳐가 모종의 일본식 ‘햇빛정책’이 되어 결국 동북아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면, 이번 사건은 아베의 장기적 시야가 부족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정말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돈을 벌어 재래식이든 비대칭 전력이로든 지금보다 호전적으로 변한다면, 이에 1차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남이 아닌 대한민국이지 않는가. 지금까지 공고했던 한미일의 대북 억제정책을 일본이 제멋대로 ‘탈출’한 것은 원칙에 어긋나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아뿔싸 하는 찰나 우리 등에 꼽힐 칼이 생겨버렸기에 동요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 정부는 무얼 했는가?

과장 섞어 말하자면, 오랜 세월 한반도의 무수한 일반인들은 우리를 지켜야할 지도자들의 무능력과 ‘아마이’함에 치이고 뺏기고 헐벚은 채로, 그러나 종체 알수 없는 어떠한 유대감과 끈기로 살아남아왔다. 센카쿠 영유권 문제로 중일이 막 충돌할 즈음, 그 섬을 도쿄도(都)가 구입해 국유화하겠다는 결정에 중국이 발끈하던 일화가 기억난다. 중일간의 센카쿠 분쟁과 비교해 한일 간 독도에 있어 필자는 대한민국이 사실 굉장히 우위에 있다고 본다. 그 이유란? 센카쿠는 사람이 없는 무인도지만, 독도에는 지금 대한민국 우편번호를 가진 거주민과 경찰이 실제로 살기 때문이다. 신라 장군 이사부? 안용복? 다 필요 없다. 센카쿠에는 일본인이 없지만 독도에는 평범한 한국인이 70년대부터 살면서 명실상부 이 나라의 실질적 영토로 쐐기박고 있다. 정부가 국유화하고 이슈화하고 할 것 없이, 이름없는 일반인들이 묵묵히 독도와 연평도를 떠나지 않고 살면서 자연스레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는 어차피 지도자가 아닌 민중이 이끌어왔다 – 김지하

일본인은 아마이하지만 그네들의 정부각료와 지도자들은 계산적이고 철두철미했다. 한국은 그 반대다. 한국인은 미스터리하게 자의식이 강하고 생존력있다. 그러나 우리네 지도자들은 아마이하다. 북일협상까지 갈 것도 없었다. 세월호 비극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던가? 이만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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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g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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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 editor-in-chi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