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뉴스

례허식이라면 일가견 있는 한국 정치인이 또 한건 했다. 얼핏 별것 아닌 것으로 일어난 소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상 뒤에 숨어있는 의의를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워싱턴 D.C.까지 가서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들 앞에 넙죽 큰절을 올렸다는 김무성 대표에게 사대주의적이라는 비판, ‘절무성’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지는 가운데, 조금 다른 방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접근해보고싶다. 이번 절무성 해프닝은 사대주의 문제가 아닌, 예의와 감사에 대한 한국과 서구의 표현방식 차이에 김무성 대표가 무지해 빚은 촌극이기 때문이다.

이솝우화 중 유명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했는데 접시에 스프를 대접했더니 두루미는 부리가 뾰족해 먹지를 못했고,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하면 길쭉한 병에 스프를 대접해서 여우가 입도 못 댔다는 이야기. 선의의 행동이라도 서로에 대한 간단한 이해조차 없이 대접을 했더니 역효과를 냈다는 내용이다. 절무성 해프닝에서 여우와 두루미가 떠오른 건 우연일까. 이 나라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라고,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참전용사들께는 “내년에 가서 또 절하겠다”며 올린 큰절. 하지만 미국인들은 과연 절무성의 큰절을 보며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명절에 손윗사람에게 드리는 인사인 큰절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두 손을 바닥에 대고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이고 하는 절
이런 행동거지는 영어권에서 한 치 의심 없이 kowtow라고 번역한다. Kowtow는 중국어의 고두(叩頭)를 음차한 동사. 딱히 손 모양은 어찌됐든 머리, 허리, 무릎을 함께 굽히는 모습을 포괄적으로 ‘kowtow한다’고 표현하는데, 쉽게 말해 더 굴욕적일 수 없는 최악의 굴욕을 뜻한다.

메카트니 특사와 건륭제

Kowtow가 서구에 알려진 것은 200년 전 영국이 중국과 통상을 맺고자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서에 따라서 아예 kowtow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화는 영국왕의 사절인 애머스트가 청나라 황제에게 고두례를 올리길 거부해 알현하지 못하고 돌아서야했던 일이다. “중국은 광대하고 물산이 풍부해 외국과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고 황제가 떵떵거렸다는, 근대 아시아의 후진성과 폐쇄성을 부각하고자 자유무역주의자들이 인용하거나, 반대로 18세기까지 세계 총생산량의 3할을 차지했다는 중국의 잠재력을 경제사학자들이 설명하는 데 쓰는 저 다용도 문구도 이 사건에서 나왔다. 어쨌던 고두의 예는 조공제도의 바깥에서 살던 유럽인들에게 낯설 뿐만 아니라 과도히 자신을 굽혀야하는 불합리한 예식으로 인식되었다.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하고 서방의 패권시대가 도래하자 고두에는 더 많은 부정적인 의미가 부여됐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고두, 즉 kowtow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억압하고 상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비굴한 행동이다. 또한 미개한 동양의 전제군주나 요구하는, 평등한 시민사회의 정반대에 위치한 가치들의 상징이 된 것이다. 절대 비약이 아니다. 지금 당장 구글에 kowtow를 검색해 어떤 문장에 쓰이는지, 이미지 검색에 무엇이 뜨는지 확인해보라.

그분들이 원하는 건 허례허식이 아니다.

이분들이 원하는 건 허례허식이 아니다.

색동옷 곱게 차려입은 남녀 아이가 병풍에 앞에 앉아 인자히 웃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는 그런 화목한 이미지란, 한국 교과서 밖에 통용이 안 될 거란 걸 김무성 대표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아니, 곱게 색동옷 입은 귀여운 어린아이라면 모르겠는데, 다 큰 노중년 아저씨 대여섯이 냅다 와서 떼거지로 큰절을 올리면 받는 사람이 나라도 딱히 눈이 즐거울 것 같지는 않다. 연로한 미국의 노병들이 한국 국회의원의 kowtow를 받는 심정이 어땠는지 물론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단연컨대 이분들은 평생 자기 손주자식들이 누구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해라고 시킨 적도 없고, 받으려 한 적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군인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용사에게 존경을 표하는 짧고 엄숙한 경례지, 낯설고 구차한 고두례가 아닐 것 같다. 설령 자원봉사자든 주미대사관 직원이든 누군가가 “이것은 ‘큰절’이란건데, 존경의 의미를 담은 한국의 전통예법입니다”라고 구구절절 귀뜸한들, 머리로만 이해하겠지 겨우 말 한줄로 문화차이를 넘어 공감이 바로 되겠느냔 말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정도껏 하자.

급변하는 동북아, 미일간의 소위 신밀월,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말년을 배경으로 김 대표가 한편의 쇼를 펼쳐보려 했던 것 같으나 아무래도 역효과만 난 것 같아 씁슬하다. 절을 받는 미국인들은 의아해하거나 비웃었을 터이고, 국내에선 절무성이라며 실컷 뭇매질하니 말이다. 차기 미국대선에 출마하려고 역시 온갖 쇼를 연출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마침 한국은 미국에 안보 무임승차하는 ‘미친 나라’ 라고 해 물의를 일으킨 참인데 기분이 묘하다.

Byunghun

Byunghun

Founder, editor-in-chi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