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강연, 슈퍼스타 내한공연 보는 듯” -매일경제
19일, 『21세기 자본론』으로 전세계에 불평등 문제를 뜨겁게 달군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교수가 내한했다. 글로벌 누진자본세, 조세 공평성, 교육을 통한 성장 원동력 확충 등을 주장하는 피케티 파(派)의 해결책에 대해 반색하는 국내 유수의 금융, 증권사 계열 참석자들의 반응은 대충:

“기업 누진세 등 주장 일부는 국내에 적용하기 힘들다”(이재술 딜로이트안진 회장), “소득불평등의 원인은 매우 다양…적용하는데 무리가 있다(김재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  그리고 좀 더 격하게 가자면 “…나이브하고 어떤 면에서 매우 정치적이다.”(오정근 아시아 금융학회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본소득률’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이들의 직위 및 소속을 눈여기기만해도 이 반(反)피케티 진영의 흔한 반응은 이미 충분히 ‘정치적’이다. 미안하지만 ‘정치’의 세계와 ‘경제’가 순수히 별개의 실체라고, 또는 별개여야 한다고 믿는 신조야 말로 지극히 순진하고 나이브하다. 인류가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부를 창출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둘은 줄곧 뒤섞여있었고 별개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티 없이 순수한 자유시장이란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정의내리기 나름이다.) 불평등의 문제, 자중손실의 문제를 마법같은 시장의 논리로 ‘교환 당사자들에게 언제나 효율을 극대화’해 해결한 적은 없었다.

교수들과 회계법인 사장 등 저 높은 분들이 포럼이니 학회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피케티의 책 감상평을 읊는 이 순간에도, 유럽을 위협하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와 자산동결이 시작했고, 조세법 회피를 위해 전략적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거대기업을 당국이 저지하려 하며, 저 ‘나이브’한 양반들의 신념의 근거가 되는 어느 경제학파의 요람, 아이비리그가 거액의 기금을 굴리는 동안 정작 대학들이 위치한 지역의 소득불평등은 솟구치는 등 (예일대는 주식 투자로 $200억 상당의 기금과 200여채의 부동산을 거느린 반면 대학이 소재한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10위 중 하나다.) 경제와 정치의 세계는 함께 끊임없이 요동치며, 더 잘살아보려는 모든 인류의 희망과 몸부림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정치 앤드 경제가 아니라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이라는 하나의 세부학문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다.

그런데도 정치적 함의가 들어있다, 또는 유추한다는 이유로ㅡ응당 그래야 할 것을! ㅡ 피케티의 처방은 공신력이 떨어진 다는 듯 젠 체 하는 태도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넓게 말해 이 세상에 인간사회가 돌아가는 한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그만 좀 순진해라.

South Korea ranked the highest among the OECD in elderly poverty.

South Korea ranked the highest among the OECD in elderly poverty.

그리고 “국내에 적용하기 힘들다” 거나 “한국 상황과 맞지 않다” 등 소극적, 국지적 반론을 내는 태도도 다른 의미에서 잘못되었다. 이것은 마치 대한민국의 케이스는 별개라는, 예외주의(exceptionalism)적인 발언인데, 불과 몇 세기 전에 민주주의가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에 ‘적용하기 힘들다, 맞지 않다’ 고 회의하는 지성들이 대다수였음을 상기해보자. 세습재벌자본과 정경유착, OECD국가 중 소득 불평등 최상위, 노인 빈곤율 1위 등 갖은 오명으로 점칠된 한국이야말로 예외가 아니라, 피케티의 처방을 가장 시급히 적용해야 할 나라가 아닐까?  이런 논의 자체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져야하는 곳 또한 이 나라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사실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다.

不爲也  不能也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ㅡ 맹자(孟子)

피케티의 연구 및 접근방법을 데이터 분석 및 실증적으로 반박하지는  않고, 색안경부터 끼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가까운 논리를 펼치는 몇몇 반응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까지 찾아와, 이제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는 자본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한 피케티 교수에게 경의를 표한다.

Byunghun

Byunghun

Founder, editor-in-chief